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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봉주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일개 로펌 변호사이다.
일련의 사태를 다른세상 이야기처럼 곁눈질로 보아 오다가 며칠전 경험한 사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정봉주는 자신을 언론고발한 아무개양의 주장을 듣고 하루 이틀을 침묵한 이후에, 피해자가 지목한 그 날짜의 행적을 가지고 자신을 변호를 하였다. 지인 변호사 중 일부는 정봉주의 대응이 통상의 소송에서 법리다툼을 할 때 흔히 사용되는 소송기술이라 하며 진실치 못하다 비난하기도 하였다. 쿨하게 사건의 진실을 밝히면 되지 세세한 진술의 오류를 잡으려 하느냐는 비판이었다. 나역시 정봉주의 주변에 변호사가 있어 사건대응을 지휘해주겠거니 생각했었다.

 

며칠전 나는 내가 직접 피해자로서 고소장을 제출했던 사건에서 법원에 증인으로 서게 되었다. 사건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매우 간략히 이야기하면, 내가 임차한 부동산의 임대기간이 얼마 남지않은 상태에서, 임대인과의 계약주선 없이 새로운 임차인을 임의로 들였는데 그 임차인이 임대인과 계약도 하지 않고 나와도 전대계약을 하지 않아 사기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고소장은 6개월 전 제출했었는데 3개월 전 검찰에서 벌금 100만원으로 약식기소가 되었고, 피고인이 이의해서 정식재판을 하던 중 검사가 나를 증인으로 부른 것이었다.

 

내가 겪은 사건은 불과 1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그자 때문에 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달에 거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6개월 후에는 내용증명과 고소장, 민사소장 등 여러 서류를 작성하면서 그 사건을 수십번 이상 되뇌었었다.

 

그런데 막상 증인신문날짜가 되어 그 사건을 떠올리려 하니 디테일한 부분이 잘 기억이 안나는 것이었다. 정확한 날짜와 몇시쯤 피고인에게 전화가 왔는지, 첫번째 전화에서는 어떤 이야기로 나를 기망 했는지, 다음날 내가 연락을 했는지 안했는지 등의 사정 말이다. 그래서 6개월 전 작성한 고소장, 민사 소장 등 문서를 다시 출력해서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내가 1년전 겪었던 일을 사건 이후 수십번에 걸쳐 복기하고 되뇌었어도 현재 기억이 가물가물한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건이 내게 정신적 충격을 과다히 주긴 하였으나, 내 장기기억 저장소의 일부를 차지할만큼 중요하지는 않았고 그 사이 생각해야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불과 4개월 전 크리스마스날 오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이는 구속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한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 반문하기도 한다. 나는 각자에게 10년전 있었던 큰 이벤트를 생각해보라 하고싶다. 10년전 내게 발생한 큰 일 하나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이다. 대학원 합격순간과 입학장면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대학원 입학일 전 일주일간 나와 직접 만나 축하를 전해준 자가 누구누구인지, 그자와 커피를 마셨는지 밥을 먹었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10년 전 대학원에 입학일 전 내게 추근덕댔지요? 라고 공개질의를 해온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증인신문을 마치고 나니 정봉주가 당시 기억이 안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저격하는 자에 맞서기 위해서 당시의 기록을 찾고 하나하나 항변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던 중 그 호텔에서의 당일 사용기록이 나왔고, 그 사실을 "스스로" 공개한 후, 결국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보통사람 이상이다. 

 

정봉주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 것도 자기의 죄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당신도 죄인이어야 할 것이다.

 

키스미수사건 혹은 유쾌하지 못한 데이트가 정치생활을 끝내야 할 만큼 도덕적 잘못이 큰 것인지와 결혼을 했음에도 다른 이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는 등의 도덕적 비난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뿐 이 글의 주제가 아님을 살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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